[이장희 칼럼] 남북, 장기목표로 ‘한반도 영세중립선언’ 신중히 준비해야 (2025.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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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09-09 10:03 조회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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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장기목표로 ‘한반도 영세중립선언’ 신중히 준비해야
- 이장희
- 승인 2025.08.21 16:38
[칼럼]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광복 80주년, 2025년 8월 현재, 한반도를 둘려싼 국제정세가 요동친다. 남북한 화해협력의 탈출구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금의 국제정세는 이 땅에서 1884년 청일전쟁을 치른 9년후 다시 이 땅에서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과 같다.
일본의 대청국, 대러시아 아시아 제패 야욕 싸움장을 왜 하필 제3의 조선 땅으로 이용했는가? 당시 일본, 러시아, 청국, 미국 등 강대국 패권싸움의 중심에 있었던 고종은 무슨 비감한 생각을 했을까?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열강의 보장을 얻어 대한제국을 중립화하는 데 두었다. 고종은 1900년 의화단 사건이 확산되어 열강이 한국에 파병할 것을 우려, 러시아, 일본, 미국을 상대로 중립화 가능성을 백방으로 타진했다. 그러나 고종의 외교는 조선에 야심을 갖고 있던 일본의 강력한 반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고종은 조선을 둘려싼 두 번째 강대국 패권전쟁, 러·일 전쟁의 한반도 발발을 방지해 백성의 생명보호와 이 강토의 피폐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남의 나라 전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 고종은 심사숙고한 끝에 1904년 1월 20일 「조선 중립화 선언」을 일방적으로 공포하고, 이를 각국에 동의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또 국제적십자사에도 대한적십자사 창립 및 가입을 신청하였다.
그런데 「조선 중립화 선언」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도 긍정적 해답을 보내지 않았다. 결국 1904-1905년 러일전쟁, 조선을 둘려싼 무력충돌은 발발했다. 그 결과는 일제의 초기 야욕대로 1905년 한일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 박탈-1910 한일강제병탄조약으로 이어저 조선 식민지가 기정사실화되었다.
여기서 1904년 고종의 조선중립화선언 실패 주요인은 당시 조선이 대내외적 국력이 없었기에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은 자국 이익을 위해서 조선의 중립화선언 인정보다는 일본 편을 더 주요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금 곰곰이 생각하면, 시대적 배경 및 구체적 사건 개요는 전혀 다르지만, 아시아 패권을 둘려싼 국제 제국주의 패권쟁취 수법은 너무 흡사하다. 2001년 9.11 사태를 시작으로 2002년, 2010년 이후 노골화된 대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신국제패권주의 양상이 아시아를 현재 강타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미국은 2002년 시작 2004년 수정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계획이라는 주한 미군기지의 효율적 활용, 불필요한 주한미군기지 반환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대중국 견제를 위해서 미군기지 재편성 작업에 20년전에 이미 착수했다. 소위 LPP 계획은 불필요한 미군기지 훈련장은 한국에 반환하고, 꼭 필요한 곳에 새 미군기지(주로 서해 평택 쪽)를 한국에 요청, 확대하는 것은 장차 중국 견제를 위해서 주한미군기지의 효율성을 높이고, 반환을 통한 한국인의 정서에도 부합하려는 치밀한 제국주의적 작전이다.
중국의 GDP(국민총생산)가 일본을 앞지른 2010년 이후부터 주한미군은 북한의 방어보다는 중국의 태평양진출을 봉쇄. 견제하는데 더 방점을 두었다. 한국에 성주 소성리 사드(THAAD) 설치를 포함하여 전투력 중심 미군기지를 모두 ‘평택-군산-제주도’라는 서해 군사전력 밸트로 이전, 획정하여 실행에 옮겼다. 특히 동두천을 제외한 경기북부, 서울 인근 모든 미군기지가 평택 험프리 미군기지로 이전하였다.
평택 미군기지는 단일 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 미군기지라고 한다. 평택 미군 공군기지는 실시간 미군 항공기로 중국의 일거수 일투족을 현재 감시한다. 뿐만 아니다. 일본 후방 7개 유엔사 그리고 이들의 병참 보급을 빙자한 한반도 진입을 노리는 일본자위대는 한반도 유사시 자동 개입할 법제도적 군사적 임전 태세 준비를 모두 마쳤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은 ‘전략적 유연성과 동맹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자국 패권적 이해를 위해서 특히 주한 미군기지를 대중국 견제 미군전초기지라고 노골적으로 공언하였다.
남측 역대 정부는 관행적으로 한미동맹에 기초하여, 한반도 평화, 균형 외교를 형식적으로 표방했다. 그리고 북은 변함없이 남측 제안에 소극적이었고, 핵무기 개발 및 핵무장에 힘을 쏟아 현재 시점 ‘사실상 핵무기보유국’이 되었다.
광복 80주년, 새 정부는 8.15 경축사에서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평화국가와 문화국가를 강조하였다. 특히 평화국가 지향에서 남북이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한 남과 북은 상호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그 과정의 특수관계“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남북의 적대관계 폐기를 강조하였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에 상호 체제의 인정/존중 정신이 6.15공동선언, 10.4선언, 4.27판문점선언, 919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간 모든 합의를 관통하고 있는 정신이라고 보았다. 정곡을 찌른 표현이라고 본다. 또 오랜만에 한미동맹이라는 용어가 대통령 경축사 전문에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것도 역대정부의 8.15 경축사와 큰 차별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둘려싼 국제정세가 녹녹치 않다. 또 남북관계도 그 관계 정립과 그 해법이 매우 복잡하고 간단하지 않다. 미국은 종전의 한미동맹이라는 용어 대신, ‘동맹의 현대화’란 용어로 수정하여 사실상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 방위보다 중국 견제를 포함한 태평양 지역안보에 더 주요한 역할을 공개적으로 표방했다. 나아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주한미군 및 유엔사가 앞장서서 미국의 태평양지역 패권적 이해를 위해 더 강한 임무를 맡을 것을 공언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지정학상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위치한 한반도의 주변 국제정세는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직전과 너무 유사하다. 우리가 원하지 않은 미국의 패권전쟁에 이 강토가 전쟁터가 되고, 또 우리 국군과 주한미군이 함께 끼어들어 가는 형세이다.
최근 ‘동맹의 현대화’는 노골적으로 2006년 ‘전략적 유연성’의 다른 표현이다. 즉, 대한민국정부와 아무런 협의 없이도 전시에 돌입하면, 전시작전권이 한미연합사(사실상 미군)로 자동으로 이전된다. 주한 미군은 북한의 방어보다 대만 유사사태 시에 대중국 견제를 위해서 바로 자동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원하지 않는 중국, 러시아, 북한을 상대로 한 국제지역전쟁에 대한민국 국군이 1964년 월남전 참전처럼 얽히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남북한이 70년 이상 분단되어 군사적으로 극도로 대립상태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 나라와 이 땅이 강대국 전쟁에 또다시 휘말리는 것은 생각할수록 끔직한 흑역사의 반복이다. 반드시 6.25 같은 냉전질서 속에서 남북한 동족간 비극을 막아야 한다. 이를 막는 방법이 무엇일까?
새정부의 기조대로 남북한이 상호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적대관계를 포기하고, 남북간 평화공존을 유지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의 노력은 물론 타국의 협력 보장과 타국의 방해가 없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남북이 깊이 사전 협의하여 ‘한반도 영세 중립’을 국제사회에 선언하여 주요 국가와 유엔 지지를 보장받자는 것이다.
본시 중립은 전쟁을 전제로 한 개념이며, 교전당사국에 대한 법적 지위이다. ‘영세 중립’은 특별조약(스위스) 또는 중립선언(오스트리아)에 의하여 중립화된 국가의 중립이다. 중립의 실질적 개념은 중립국은 모든 교전당사국에게 공평하게 대우할 의무 그리고 군사작전을 삼가야 할 무원조를 내용으로 한다. 대신 교전당사국의 어느 일방도 중립국의 영토, 영해, 영공은 불가침이다. 이를 주요 국가로부터 보장받는 것이다.
1904년 1월 20일 고종은 일방적으로 조선의 영세 중립을 선언하고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정부에 이를 통보하면서 강대국은 조선에서 전쟁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러일전쟁은 조선에서 발생하였다. 고종의 영세중립선언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은 군사력, 추진세력, 자주성 등 당시 조선이 국제사회와 강대국을 움직일 만한 자주적 국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 남북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은 과거 1904년 조선과는 매우 다르다. 남한은 WTO 회원국 166개국 중 6번째로 경제력을 가진 나라이다. 또 북한은 아홉번 째로 사실상 핵무기보유국이다. 남한의 경제력, 북한의 핵무력, 이는 국제사회가 무시할 수 없을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징표이며, 남북 두 나라의 「한반도 영세 중립선언」에 국제사회와 주요국이 반대할 나라가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종의 1904년 영세중립구상을 현 시점에서 충분히 검토 분석할 만하다고 본다.
2025년 6월 새 정부의 대북전단살포 금지조치에 북한의 대남오물풍선 중단, 대북방송중단에 북한의 대남방송중단, 대북확성기 철거에 대남확성기 철거(비록 부인했지만)라는 북한의 조용한 호응은 매우 긍정적 조치이다.
더구나 새 남측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상호 실체 인정과 존중 나아가 적대관계 종식 그리고 평화공존을 지향한다. 남북정상합의 중에서 실천 가능한 것을 먼저 실천에 옯긴다고 한다. 올바른 평화통일 정책 방향 설정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외풍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의 민족 자주적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 바로 그 정답은 미국의 신제국주의가 극도로 발호하는 이 시점에 남한은 「한반도 영세 중립선언」을 선제적으로 기획하고 준비하여, 북측과 긴밀하게 협의하여 남북 공동 제안할 것을 세심하게 검토해보길 바란다.
당장 남북의 국가간 접촉이 어려운 경우에는 조선그리스도연맹 회원인 세계개혁교회협의회(World Communion of Reformed Churches: WCRC)가 남북 기독교인의 만남을 통해 「한반도 영세 중립선언」을 토의할 수도 있다. 세계개혁교회협의회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탄생에서도 막후에 주요한 역할을 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광복 80주년, 남북한의 국력과 한반도 주변정세로 보아서 남북한은 국제적 보장을 받는 「한반도 영세 중립선언」을 장기적 목표로 신중히 준비할 시점이다.

-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KIEL) 대학 법학박사(국제법)
- 미국 Yale Law School Visiting Scholar, Hawaii East-West Center Fellow,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국제공법 막스프랑크 연구소 객원연구위원(역임)
- 한국외대 법과대학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한독법률학회 부회장(역임)
-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 위위회 위원장(역임)
- 경실련 통일협회 정책위원장/운영위원장, 통일교육협의회 상임공동대표, 민화협 상임공동의장(역임).
- 대한적십자사국제인도법자문위원장,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영문학술저널),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사NGO포럼 이사장,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정책기획기위원회 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재외동포재단자문위원, 외교부 자문위원(역임)
- 민화협 고문,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 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공동대표, 자주통일평화연대서울본부 대표상임의장, 서울시국회의 상임공동의장(현재)
-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ILA 런던본부 “Use of Force”상임위원회 위원(현재)
- 진실화해위원회 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해양경찰청 국제해양법위원회 위원, (사)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원장(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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