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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 모르쇠 일본…발뺌 못 할 ‘결정적 물증’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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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09-02 10:04 조회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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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점선면]간토대학살 모르쇠 일본…발뺌 못 할 ‘결정적 물증’ 나왔다


입력 2025.09.02 07:00

  •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이규수 강덕상자료센터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강덕상자료센터에서 ‘지진재해에 따른 조선인과 지나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상황 기타 조사의 건’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규수 강덕상자료센터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강덕상자료센터에서 ‘지진재해에 따른 조선인과 지나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상황 기타 조사의 건’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102년 전인 1923년 9월1일. 일본 간토(관동) 지역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수십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수도인 도쿄 등 주요 도시가 초토화된 가운데, 조선인들이 혐오범죄의 표적이 됐습니다. 자경단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 유언비어를 앞세워 학살에 나섰습니다. 희생된 조선인은 최소 6000여명에서 최대 2만300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일본 정부는 100년이 넘도록 “관련 기록이 없다”며 책임을 부정해 왔는데요. 경향신문이 최근 일본 정부의 주장을 뒤집는 ‘물증’을 찾았습니다. 조선인 학살 기록이 상세히 담긴 당시 일본 정부의 공문서 원본이 공개된 겁니다.

문서를 공개한 이는 강덕상자료센터의 이규수 센터장입니다. 센터는 간토대지진 연구에 매진한 재일 역사학자 강덕상 선생(1931~2021)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이 문서도 강 선생이 보관하고 있던 자료입니다. 강 선생은 이 문서를 잃어버린 줄 알고 있었는데, 별세한 뒤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문서가 발견됐다고 해요.

1923년 11월21일 작성된 이 문서의 제목은 ‘지진재해에 따른 조선인과 지나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상황 기타 조사의 건’입니다. 야스코치 아사키치 당시 가나가와현 지사가 관내에서 발생한 조선인 살인 사건 등을 소노다 다다히코 내무성 경보국장(경시청장)에게 보고한 보고서입니다. 54쪽에 달하는 문서에는 조선인 학살 사건의 발생 시간과 장소, 범행 동기와 목적, 피해자·가해자 정보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문서를 보면, 1923년 9월2일부터 4일까지 가나가와현에서만 총 59건의 사건으로 145명이 살해당하고 2명이 다쳤습니다. 학살 당시의 광기와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문서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1923년 9월4일 차태숙씨(당시 34세)를 살해한 일본인 인부 사쿠마 히사키치의 범행 동기는 “조선인이 범행을 저지른다는 선전에 현지 주민들이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결과”였습니다. 이틀 전인 9월2일에는 조선인 노동자 7명이 자경단에게 학살당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조사 결과 “조선인이 각종 범행을 저지른다는 소문으로 불안과 공포가 있었고, 자경 중 수상한 태도를 보여 심문했으나 장래 범행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살해했다”고 드러났어요.

이 문서는 간토대학살의 실체를 명확히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반박할 명확한 물증입니다. 2023년 이 문서의 복사본이 공개되기도 했지만, 일본 정부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모르쇠로 일관해 왔습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수조차 집계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 시민사회와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진상규명 움직임이 있어요.

한국 정부도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의지를 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일본을 찾았을 때 재일동포 오찬간담회에서 “100년 전 아라카와 강변에서 벌어진 끔찍한 역사, 그리고 여전히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골들의 넋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라카와 강변은 당시 조선인 학살이 자행된 주요 장소입니다.

이규수 강덕상자료센터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강덕상자료센터에서 인터뷰 중 관동대지진 관련 고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규수 강덕상자료센터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강덕상자료센터에서 인터뷰 중 관동대지진 관련 고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간토대학살 진상규명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은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규수 센터장은 간토대학살을 ‘폭력의 기억이 사회를 물들이면서 발생한 비극’이라고 봤어요. 조선인 학살에 앞장선 자경단에는 1894~1895년 청일전쟁 참전 군인들이 많이 소속돼 있었습니다. 폭력의 고리를 끊지 못한 이들이, 한국 민족운동에 대한 공포·반발을 기폭제 삼아 집단학살이라는 혐오범죄를 일으켰다는 것이죠.

이와 함께 이규수 센터장은 당시 일부 경찰·군인이 조선인들을 보호한 것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건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살과 보호, 모든 기록을 포함해 기본적인 진실 추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죠. 이 센터장은 “간토대지진 학살은 남북한이 함께 풀어가야 할 역사 과제”라며 “직접 교류가 어렵다면 일본 도쿄나 중국 옌볜 등 제3의 장소를 통한 학술 교류도 모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민족주의에 기반한 외국인 혐오가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극우세력과 정치권은 적극적으로 중국인 혐오를 이용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내국인의 일자리를 뺏는다거나, 이주민·난민이 늘면 범죄율이 올라간다는 등 여러 오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진혜 변호사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가 개발한 ‘올포트 척도’를 소개합니다. 사회적 편견·차별의 발현 정도를 단계를 나타내는 도구인데요. 혐오발언, 회피, 차별, 신체적 공격, 집단학살 등 5개 단계로 구성됩니다. 한국의 경우 극우단체 회원들이 폭력을 동원해 이주민을 사적으로 체포하고 다닌 사례도 있는 만큼, 올포트 척도상 3~4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진혜 변호사는 “외국인, 특히 중국인에 대한 괴롭힘과 폭력 가해로 이어지는 현상의 기저에 바로 혐오 표현과 선동이 있으며, 이를 용인하는 순간 혐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킨다”며 “불온한 공포 조장 등을 목적으로 유언비어를 배포하고 혐오 정서를 선동하는 행위를 하거나 이에 동조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혐오·차별을 멈춰 세우지 않으면 더 큰 비극을 부를 수 있다는 것. 간토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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